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앙 굴라르 (문단 편집) === 정계 입문 === 1945년 10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제툴리우 바르가스]]와의 친분[* 바르가스의 형과 굴라르의 아버지가 동업을 했다.]으로 정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르가스는 자신이 창당한 [[브라질 노동당]]에 굴라르를 영입했다. 굴라르는 1947년 주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4,150표를 득표해 5위를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그는 바르가스가 다시 대선에 출마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했으며 1951년 바르가스는 제17대 대통령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1950년 총선에서 굴라르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소속당에서 두 번째로 많은 39,832표를 득표했기에 당 부대표를 맡게 되었다. 1951년 1월 [[히우그란지두술]]주의 내무국장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엔 [[브라질 노동당]]의 당대표가 되었다. 1953년 임금문제로 노동자의 파업이 발생하고 우익 정당인 전국민주연합(UDN)이 중상류층과 군인, 언론을 대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킬 기미가 보이자 바르가스 대통령은 굴라르를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굴라르는 노동계급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고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 우대 법령를 통과시켰다. 또한 노동관련 파업을 강제 진압하지 않고 노사 간의 협의를 이끌어내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런 노조 친화적인 행보로 인해 우익 자본가들과 군부 내 극우 장교단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전임 [[에우리쿠 가스파 두트라]]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된 정책을 전혀 건들지 않았다. 이에 굴라르는 1953년 말, [[최저임금]] 100% 인상을 단행했고 당시 언론과 군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1954년 2월 22일, 굴라르는 장관직 사직서를 제출했고 다음날 수리되었다. 1954년 10월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허나 1955년 10월 대선에서 굴라르는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파트너인 대통령엔 사회민주당 소속인 [[주셀리누 쿠비체크|쿠비체크]]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과반 득표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중도우파 정당인 국가민주연합(UDN)이 결과에 불복하며 논란이 발생했다. 게다가 당시 대통령인 [[카를루스 루스]]도 이 의견에 동조하면서 사건이 커졌지만 결국 루스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정상적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